복음과 선교

복음과 선교

들어가는

이 주제는 요즘 선교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주제이며 또한 이슈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복음에 대해 그리고 선교에 대해 다시한번 그 뜻을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이며 선교란 무엇인가? 질문을 해 보자.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 해답은 복음서에 찾기 보다는 초대교회를 세웠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한 몇 개의 구절들을 살펴보는게 좋을 것 같다.

  1. 사도행전 2장36절  “—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2. 주(Lord = Kurios =Master, Sovereign, Prince, Emperor)=부활 생명과 관련 = 새 생명의 주인
  3. 그리스도(Christ = Anointed, Messiah, the Son of God/Savior 처음에 이방인들이 사용)=구원과 관련, 십자가와 죽음과 관련
  4. 예수(Jesus = Jehovah or Joshua is Salvation)  마1:21 “ …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 he sha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5. 고린도전서 15장: 3-4절 “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묻히혔다는 것과 성경대로 제삼 일에 살아나셨다는 …”
  6.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심: 사 53:5-8, 시22:14-18
  7. 우리의 새 생명을 위한 부활하심: 사53:10-11, 시16:9-10
  8. 사도행전3장 14-15절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
  9. 사도행전 4장 10절 “… 너희가 십자가에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10. 십자가에 못 박고(Crucified)
  11.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raised from the dead)

이 세 개의 구절들을 통해 간단히 복음을 요약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소식을 믿는 모든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

이처럼 구원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구원은 믿기만 하면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이 믿음은 구원의 여정의 시작으로서 기적으로 이집트의 속박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서도 광야에서 멸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음을 히브리서는 경고하고 있고, 사도들도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다.

“…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브리서3: 7-15).

바울도 경고하기를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육신에 속한 자”(고전2:1-3)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다고 하셨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 16-17).

비록 예수님을 영접하여 성령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어도 우리가 불순종하면 그 성전은 멸하시겠다는 것이다.

  1. 십자가 복음

먼저 십자가복음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우린 모두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십자가에 대해서 알고 있다. 교회 안에는 매 주 십자가에 관한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십자가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계시적 십자가 복음을 모르면 예수님을 믿을 수는 있어도 그분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시된 믿음은 곧 바로 사랑으로 연결되기에 사도들은 편지를 쓸 때 마다 “믿음과 사랑”을 같이 썼다(엡1:5, 3:17, 6:23 골1:4살전1:3, 3:6).

마치 계시된 믿음이 아니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는 고백하는데 실제는 다른 여인에게 가 있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의 사랑은 세상이고 정욕인데 주님을 사랑한다고 흉내내는 연기를 매번 해야하는 상황과 부딪힌다.  

믿음과 사랑은 하나이다.

첫째, 십자가 복음은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는가?

십자가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도임(=하나님의 아들, 마27:54)을 가르쳐주고 있다. 귀신들은 일찍이 이 사실을 알고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부르짓었다(마8:29, 막3:11, 5:7, 눅8:28).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는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해 계시하셨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것에서 그 예표를 볼 수 있다. “… 아담은 오실 분의 예표입니다”(롬5:14).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의 아내인 하와를 창조하기 위해 깊이 잠들게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배필인 교회를 창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이다.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과 아내를 사랑하십시요… 이 비밀이 위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엡5:25-32)

이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영이다라는 고린도전서 6장 17절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이다”)과 함께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예표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고백할 때 우리가 혼으로 알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영적인 일들이 실재적으로 영의 세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밀이다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이 단순한 고백이 이처럼 우리 영안에 엄청 새로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창조물입니다. 옛것들은 지나갔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 17).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신앙의 고백을 듣고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계시를 말씀하셨나? 그것은 바로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였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고 있지만 베드로 이외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없었다. 사도 요한은 이 진리를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도록 하려는 것이고 …”(요20:31)

사도 마가는 처음부터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이렇게 시작한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

이 처럼 “교회의 시작”은 이 고백에서 시작된다. 이 고백 이외에 그 어떤 시도나 고백도 교회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한 이것은 영적인 비밀이며, 오직 아버지의 계시로 되는 것이지 어떤 육체적인 기적이나 이적을 보고 고백되는 것도 아님을 밝혀 둔다.

마태복음에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 두 번의 사건이 더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보여지는 기적의 현상 앞에 즉 육체적인 일에 국한 된 것이기에 주님은 이에 대해 침묵하셨다(마14:33, 27:54).

물론 귀신들이 고백할 때에는 꾸짖으셨다.

 주님께서는 이 고백을 오직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받으시기 원하셨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만 받고자 하셨다. 주님에 대한 고백은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이 고백의 영적인 의미는 “주님과 하나됨 즉 연합(영적인 결혼)”을 상징하고 실제로 완전한 연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황홀한 영적인 결혼을 하지 못하고 마치 약혼한 상태로 있으면서 신랑이 누구인지 혹은 신랑과 약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의 관계를 다룬 아가서가 바로 지금 우리가 주님과 맺어진 관계의 표현이며 노래이다. 솔로몬은 부활과 승천 및 승리의 생활을 영위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그림자), 술람미 여인은 주님의 궁전으로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는 성도를 예표한다.

그분의 입으로 나에게 맞추게 하소서!”(아가서1:1)

이렇게 영적으로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결혼의 충만을 누리고 사랑의 시작을 할 수 있는 영적인 갈망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답변은 바로 영적인 계시이며 이 복음적 계시로 인해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된다. 이 성령의 계시로 인해 성도는 세상의 어떤 것도, 육신적 쾌락과 물질적 풍부도 주님의 사랑과 족히 비교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주여, 저는 보았습니다. 확실히 보고 알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계시가 없이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는데 우리에게 계시가 어떻게 주어지며 또한 첫 번째 관문으로 어떤 계시가 와야 하는가?

계시의 순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그리스도인은 죄사함의 계시인 믿음의 고백없이 곧 바로 “아버지의 사랑의 계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주 예수님의 답변을 보자.
  2. 마태복음 16장 16절 “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첫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라는 계시이다. 이 고백은 성도가 고백하는 첫 번째 계시가 되어야 하고 이 고백을 하는 사람들만이 “교회” 즉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 고백이 바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계시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고백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해하는 말로 바꾸어 말하면 바로 “구세주”라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이방인으로서 누가가 쓴 누가복음서에서 “구세주”라는 표현이 나온다. 초기 복음서에서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부렀고 나중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모두 유대인들로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만 설명했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이방인의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 인들에게서 “구세주”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방인 우리가 아버지의 계시로 말미암아 주님을 목격할 때 처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고백하는 말은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이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은 없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되어지는 이 계시가 첫 번째 계시이어햐 한다.

예수(Jesus = Jehovah is salvation)라는 이름 안에 이미 계시의 의미가 주어졌지만 이 예수님을 보고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많은데 구세주(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이 적다.

  • 마태복음 16장 17절이다. “… 이것을 그대에게 알게 하신 계시(Revealed = 헬 apokaluto – 분해- apo(of separation of a part from the whole)와 Kalupto(To hide, veil)합성어로서 To uncover, lay open what has been veiled or covered up.하신 분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말씀에서 아들을 계시하시는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마11:25-17)

  • 번째 계시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성령으로부터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생명 … 이 공과는 마치 천지창조가 일주일 만에 이루어졌다면 주님의 나라 건축은 6000년이 필요했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데 구속, 구원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생명복음의 내용과 크기는 이에 비교됨)
  • “…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기 때문에 …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롬5:5-8)

이 두번째 계시는 첫번째 계시 다음에 주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자.  이 계시를 모르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 사랑 만을 하면 최고의 복음’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  밖에서 ‘사랑’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이나 사랑 그리고 소망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대 그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바울이 축도를 할 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세 웠던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4)

로마서5장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해 화평을 누립니다”

먼저 믿음으로 의롭게 된 다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5장 10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이미 화목하게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 계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성취된 구속이고, 다른 계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다.

로마서 1장부터 5장 11절 까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속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 5장 12절부터 16장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에 관하여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5장 11절 이전에 바울은 우리가 구속받고, 의 롭게 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형상이 되는 정도까지는 구원받지 못했다.

첫 번째 계시는 구속, 의롭게 됨, 화목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밖에서 성취되었던 것을 계시하는 것이고, 두 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운행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옛 사람, 자아와 타고난 천연적 생명의 속성에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에 이르도록 하신다. 그 결과 우리를 그분의 생명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광스럽게 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롬8:30)

  • 바울의 답변을 보자.
  • 갈라디아서1장 1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이 설명은 바로 “계시된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7절)

  • 갈라디아서 1장 12절: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헬 = apokalupsis)로 말미암은 것이다”
  • 갈라디아서 1장 16절: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나타내시기를(헬 = apokalupto)기뻐하실 때에 …”
  • 고전2장 10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헬 – apokalupto)하셨습니다…”

상대적으로 “계시”의 헬라어 반대말(Greek opposite word) : 고전2장 7절 “… 감추진 지혜 …”  (헬)Apokrupto – apo + Krupto 로서 숨겨진 잠겨진 뜻이다.(To hide, conceal, it may not become known)

이상과 같이 바울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안 것은 바로 계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 : 아버지의 계시 혹은 아들의 계시 없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고 알게되었는가? 아버지의 계시가 있었는가?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인가, 아니면 단지 역사적인 인물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이다.

계시(신비 = Mystery)

  1. 그리스도가 신비(계시)이다.

롬16:25-26, 엡3:4, 골1:26, 골2:2, 골4:3

  • 교회도 신비이다.

엡3:6,9 , 엡5:31-32

  • 복음도 신비이다.

갈1:12, 16, 엡6:19, 고전9:19-22

  • 믿음도 신비이다(믿음은 어떤 공식이나 확신이나 교리가 아니라 신비이다)

딤전3:9

  • 지혜도 신비이다

고전2:7

  • 하나님의 뜻은 신비이다

엡1:9

  • 고백도 신비이다.

마16:17

둘째,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계시를 받을 있을까?

우리는 복음을 전해듣고 이해가 되어서 예수님을 고백하고 믿음 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많다. 모태신앙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나 바울이 말하는 것 즉 계시로 말미암아 믿음을 갖게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믿음은 전수된 것이나 혹은 배워서 그리고 들어서 얻은 것이다. 오스왈드 쳄버스는 [구속의 심리학]에서 이것을 “복음적 체험”이라고 말했다. 이 상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간증과 설교는 대부분 믿음을 강조하여 성공이나 번영을 이야기 하거나 치유를 이야기 하거나 축복이나 종교적 열심을 이야기 한다. 죄사함이나 하나님의 사랑 혹은 거듭남이나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야기 하는데는 너무 빈약하다.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은 어디에서 오게되었나?

믿음은 계시되지 않으면 아직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갈3:23 … 믿음이 계시(Apokalupto)될 때 까지 갇혀 있었다..”). 믿음은 우리 믿는 이 안에 부어주시는 일종의 은혜의 선물이다. 베드로도 믿음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에게 할당해 준 보배로운 몫 즉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하고 있다.(벧후1:1)

 †††은혜의 선물 믿음의 계시를 받을 있는 길을 알아보자.

  1. 주 예수님의 답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막1:15)

그동안 밖에 있었던 천국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도록 회개를 촉구하신다.  회개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회개’를 ‘metanoeo’ 즉 ‘마인드를 바꿔라’ 혹은 ‘가는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회개”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있다. 그것은 회개란 우리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차원에서 생각한다. 또한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는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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